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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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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

  • 지정 : 보물
  • 한자명 : 榮州 石橋里 石造如來立像
  • 유형분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34-08-27
  • 소재지 :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160-2
비록 머리가 절단되고 왼팔이 없어졌는가 하면 발목까지 땅에 묻힌 불완전한 불상이지만 세부묘사(細部描寫)는 아직도 생동감(生動感)을 충실(充室)히 보여주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나발(螺髮)의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솟아있다. 얼굴은 둥글고 복스러운데 명확한 눈썹, 온화한 눈, 적당한 입은 이 불상을 원만(圓滿)하고 온화(溫和)하게 만들고 있다. 귀는 파손되었고 목은 가는데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신체는 당당하지도 않고 우람하지도 않은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몸의 굴곡(屈曲)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실적(寫實的)인 수법(手法)을 보이고 있다. 왼팔은 절단되어 알 수 없고 바른손은 다리에서 옷자락을 잡고 있다. 여기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인데 팔에 걸친 옷자락은 유려(流麗)하며 맵씨있게 처리되고 있다. 가슴을 둥글게 만들고 있는 옷깃은 굵은 요선(凸線)으로 독특한 것이며, 이런 특이한 의문(衣紋)은 무릎을 중심(中心)으로한 단상(段狀) 동심타원형(同心楕圓形)에 현저히 나타나고 있다. 이 동심타원형 의문은 물론 삼국기(三國期) 불상 특히 장창곡불(長倉谷佛) 같은데서 벌써 묘사되었던 것이지만 여기서와 같은 단상(段狀)의 형식적(形式的)인 의문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함안대산리보살(咸安大山里菩薩)에서처럼 완전히 도식적(圖式的)인 수법까지는 진전되지 않은 9세기 경부터 제작된 청동불(靑銅佛)의 그것과 흡사하며, 이 점은 이 불상의 제작시기를 제시해 주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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