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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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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

  • 지정 : 보물
  • 한자명 : 慶州 ?藏寺址 阿彌陀佛 造像 事蹟碑
  • 유형분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귀부_이수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63-01-21
  • 소재지 : 경주시 암곡동 산1-9
비는 전체가 파훼(破毁)되어 단석삼편(斷石三片)만이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단편의 각자(刻字)에는 조상(造像)에 관한 약간의 전후사정(前後事情)을 짐작할 수 있으며, 또한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쓴 별도의 탐사기문(探査記文)도 보이고 있다. 원소재지에는 귀두(龜頭)가 절단되어 망실되고 이수(?首)는 전낙장태(轉落狀態)에 놓여 있다. 그런데 비좌 밑에 귀부가 2좌인 점과 비좌의 사주(四周)에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양각(陽刻)하고 있음은 하나의 특수한 형상이며, 귀갑(龜甲)은 오히려 도형화(圖形化)되어 경화감(硬化感)을 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육용반결운문(六龍蟠結雲文)으로 조식되고 있는 이수는 부분 절단되고 있는데 정면에 방곽전액(方廓篆額)은 마멸이 심하여 판독할 수가 없다. 이의 자(字)는 왕희지집자(王羲之集字)이다. 이 비는 신라 39대 소성왕(昭聖王)(799년, 재위 1년)의 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이 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봉조(奉造)했을 때 건립한 것으로 비의 조성년대는 소성왕이 붕어(崩御)한 다음해로 추정된다. 參考文獻: ○ 三國遺事 三卷 「무藏寺彌陀殿」條 ○ 東國通志 七卷 「佛寺무藏寺址」 條 ○ 東國輿地勝覽 第二一卷 「慶州府佛宇」 條

학술자료

  • 1. 한국의 석비 고대(국보,보물)(2020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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