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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초상

  • 지정 : 보물
  • 한자명 : 鄭琢 肖像
  • 유형분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68-12-19
  • 소재지 : 예천군 예천읍 고평길 70-15 예천박물관 보관
紗帽, 紫錦團領에 雙鶴胸背로 正裝한 七分左顔의 椅坐像이다. 足臺下 床面은 大小의 連繫式 花文으로 塡彩하고 그 界線을 畵面의 約三割 높이로 그어 適定한 安定을 期하고 있다. 朝鮮朝 忠勳府 功臣圖像의 共通된 定型이다.白髮老顔의 粉彩는 아직 鮮?하고 물걷기한 肉色의 顔廓도 彩筆의 ?絡을 精細하게 남기고 있다. 團領兩肩의 下向線은 畵面最大의 包容性으로서 展開되고 破竹과 같이 兩袖切開로써 圖像全般에 一大生氣를 賦與하고 있으며 그것이 頭上의 것과 上下로 好適한 對比를 이루고 있다. 餘他面의 線의 妙味도 여기를 따르긴 어려운 것이나 그것은 어느 正裝圖像에서나 形式化한 共通的 特色이라 하겠다. 紫錦의 雲紋은 매우 沈重한 墨色이며 그 雲紋은 衣紋의 屈析에 따른 形態의 變化에 適應한 寫實 描寫로 되지 않았고 따라서 觀念上의 鐵線描가 衣紋으로 寫出되어 있다. 이러한 相瓦系統의 實際가 略化된 技法은 이 무렵에 그려진 他肖像에서도 더러 보이는 便法이다.宣祖 37年 9月에 圖像, 11月에 圖像事由가 下賜되었고 英祖(1756)에는 質文에 있는 바와 같이 御製贊文이 下賜되었다. 贊文은 다음과 같다. 「御製畵像贊 見故相貞簡公鄭琢畵像書示其五世孫承旨鄭玉 筵中偶聞 取覽遺像 厥像偉然 穆廟名相百年之後 入手楓震 特題其銘 以聳嶺人 崇禎後三丙子九月初六日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 春秋官修撰官 鄭玉奉 敎謹書」主人公 鄭 琢, 字는 子精, 號는 藥圃, 西原人, 學生 鄭乙忠의 第二子, 中宗 11年 丙戌(1526) 醴泉에서 出生, 退溪, 南冥에게 修學, 27歲에 司馬試에 合格, 추路에 들었다. 壬辰倭亂이 勃發된후 7旬老軀로 扈從, 또는 東宮(光海君)의 ?師로서 轉地避亂하였다. 丁酉再亂時에는 中宮과 廟社主를 扈衛하며 東宮을 扈從하였다. 亂後에는 領中樞府事로 致仕, 扈從勳三等에 錄하고 忠勳貞亮扈聖功臣號로서 功臣이 되어 圖像되었다. 宣祖 38年(1605), 鄕第에서 年80으로 逝去하였고 光海君 8年(1612)에서 衛聖功臣一等에 追錄되고 領議政에 贈職되었으며 仁祖 13年(1635)에는 貞簡으로 贈謚되었다. 文集으로는 元集 7卷 4冊, 續集 4卷 2冊이 있고 醴泉에 鄕賢祠가 있는바 이 影幀은 여기 奉安되어 있다.

학술자료

  • 1. (보물 제487호) 정탁초상 보존처리 사업(2017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예천군 / 발행처 : 예천군 영축문화재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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