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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

박인로

자(호)
노계
인물유형
문인
시대배경
조선시대

노계(盧溪) 박 인로(朴仁老)선생님은 서기 1561년(명종 16년) 6월 21일 영 천군 북안면 도천동(道川洞)에서 승의부위(承議副尉) 박석(朴碩)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참봉(參奉) 주 순신(朱舜臣)의 따님이시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배우지 않아도 글을 알고, 남의 글을 읽는 것도 들으면 모두 기억하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글재주는 임진왜란때 강좌절도사(江左節度使) 성윤문(成允文) 선상탄(船上嘆), 사제곡(沙堤曲), 누항상(陋巷詞), 독락당(獨樂堂). 영남가(嶺南歌), 노계가(노계가) 등 여러 가사에 잘 나타나 있다. 또 충의심에 뛰어난 임진왜란때는 나라를 위하여 감연히 붓을 내던지고 전투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다. 어머니 주씨가 연세가 높으므로 언제나 오래 못 사실까봐 두려워하고, 효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가나하다고 해서 드리지 아니 하는 일이 없었으며, 여름이 되면 주무시는데 부채질을 해서 시원케 해드리고, 겨울에는 몸소 방이 따뜻하고 편안하시도록 힘썼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곁에 모시고 항상 어머님께서 기쁨을 누리시도록 힘썼다.

노계가 지은 "오륜가"(五倫歌)속에 "부자유친가"(父子有親歌)가 있는데 그의 효심이 잘 나타나 있다,

조홍시가와 부자유친가를 읽으매 남의 자식된 사람으로 하여금 누구나 부모님을 사모하고 효도할 것을 맹세하게 만드니 참으로 좋은 교훈의 시가가 아닐 수 없다.

뒷날에 노계선생님의 학덕과 충효사상을 경모하여 사림(士林)이 도계서원(道溪書院)을 세워 해마다 춘추로 향사를 받들어 오늘날에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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