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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도청상량고유문
유세차 계사 시월 계유삭 초삼일 을해에 경상북도지사 김관용(金寬容)은 검무산(劒
舞山)후토(后土)의 신령(神靈)이 나타나 있는 앞에서 감히 밝게 고(告)하나이다. 본
도(本道)의 청사(廳舍)는 한말(韓末)이래로 옛날 대구 포정동(布政洞) 안에 있다가
해방(解放)이후에 북구 산격동(山格洞)으로 옮겨서 관민(官民)이 합동으로 꾀를 내
어 금일(今日)에 이르도록 거의 오십년이나 멀었습니다.
만근(輓近)이래로 도민(道民)들이 모두가 소원(所願)하기를 도내로 옮겨서 도청(道
廳)을 새로 건립(建立)하자고하니 그 도민들의 뜻을 들어주며 계획하고 수차 경영
(經營)하여 안동(安東)과 예천(醴泉)의 양 평야(平野)의 경계지역인 검무산 아래에
터를 잡았습니다.
수년(數年)간 공사(工事)의 일을 하여 지금 오히려 완성(完成)이 안 되었으나 진신
(搢紳)이 모두 모여 드디어 상량(上樑)을 이루었으니 시,군(市,郡)의 도민(道民)들도
크게 거룩한 모습을 축하(祝賀)합니다.
상량(上樑)하는 날에 양송(樑頌:上樑文)이 없을 수 없기에 도내에 사백(舍伯)이며 기
애(耆艾:師父)인 안동김씨 창회(昌會)어른에게 요청하였으니, 문장(文章)도 능하시
고 덕망(德望)도 높아 사람들이 모두 태산(泰山)과 북두(北斗)라고 칭송합니다.
돌이켜 보니 본도는 유림(儒林)의 연수(淵藪:본거지)로 예악(禮樂)이나 풍속(風俗)이
추로지향(鄒魯之鄕:孔孟의 고을)이라고 칭송하며, 도덕(道德)이나 문장(文章)과 석
학(碩學)과 진유(眞儒)입니다.
전후좌우로 두루두루 명승(名勝)을 돌아보니, 동쪽은 독도로부터 문무왕릉(文武王
陵)이고, 서쪽은 세종(世宗)의 정부청사(政府廳舍)에 이르며 남쪽에는 명산(名山)인
팔공산(八公山)이라는 것이 있고 북쪽으로는 수도(首都)인 한양(漢陽)의 옛 성(城)에
이릅니다.
경주(慶州)와 상주(尙州)로 경상도(慶尙道)라 이름 하였으니 인심이 순후(醇厚)하고
풍속이 사특(私慝)하지 않으며 관민(官民)이 합심하여 주야(晝夜)로 노력하니 집집
마다 현송(絃誦)의 소리요 백성들은 모두 떳떳한 인륜(人倫)을 지키며, 들에는 격양
가(擊壤歌)를 부르고 길에는 흘린 물건도 줍지 않습니다.
도민들이 칭송하며 말하기를 “금일에 이건(移建)하는 청사(廳舍)의 일은 그 공(功)을
논(論)할 수 없으니 어진 도백(道伯)은 누구던가? 중용(中庸)으로 정치를 집행하는
선산김씨(善山金氏) 성씨(姓氏)의 관용(寬容)인데 정치(政治)가 청백(淸白)하니 백성
들이 즐거워하고 업적(業績)이 많이 있었으니 이와 같은 인걸(人傑)은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우며, 외국을 바쁘게 다니며 외자 (外資)를 유치(誘致)하고 세상을 경영(經
營)하고 백성을 구제(救濟)하며 밤낮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풍속(風俗)도 순화(純化)
되고 그 의관(衣冠)도 단정합니다. 상량(上樑)하는 청사(廳舍)가 이와 같이 장대(壯
408 - 경상북도도청이전백서(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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