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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

  • 지정 : 보물
  • 한자명 : 榮州 紹修書院 文成公廟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 시대 : 조선
  • 지정일 : 2004-04-06
  • 소재지 :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2
朝鮮王朝는 16世紀以後 官學의 衰退라는 校學體制의 崩壞속에서 새로운 敎育振興策을 模索하고 있었는데 그 代案으로 提示된 것이 書院制度였다. 紹修書院은 豊基郡岫 周世鵬에 의해 創建된 書院이다. 그러나 周世鵬에 의해 創建된 書院은 初期에는 祠廟에 附隨된 儒生들의 讀書處로 建立되었다. 따라서 士林의 注目을 받지 못하고 다만 官學의 補助的 機能을 遂行하는 程度의 機構로 認識되었다. 以後 退溪에 依하여 書院은 士林의 講學ㆍ藏修處로서 그 性格이 分明하게 되면서 士林勢力의 鄕村活動에서의 重要한 基盤으로 자리 잡게 되고 以後 急速度로 擴散되었다. 紹修書院 建立 過程을 보면 周世鵬은 豊基郡守로 赴任하면서 곧바로 中宗 37年(1542)에 고을 出身인 安珦의 祠廟을 宿水寺 옛터에 먼저 建立하였고 다음해(1543)에 安珦 宗孫의 厚意로 서울의 大宗家에 奉安되어 있던 安珦의 遺像을 가져와 新廟에 받들어 모셨으며 이어 祠廟앞에 書院을 세웠다. 그는 書院建立의 動機로 敎化를 내세웠으며, 敎化는 반드시 尊賢으로부터 始作되어야 한다고 하고, 이에 豊基의 敎化를 爲해서 祠廟와 儒生藏修를 위한 書院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요컨대 그는 이 時機 가장 時急한 課題는 敎化라고 認識하여 이것이 祠廟ㆍ書院을 세우기 된 基本的인 動機라고 한 것이다.

학술자료

  • 1. 紹修書院 講學堂 및 文成公廟 : 實測調査報告書(2003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영주시 한겨레建築士事務所 / 발행처 : 榮州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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