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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운흥동 오층전탑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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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 지정 : 보물
  • 한자명 : 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시대 : 통일신라
  • 지정일 : 1963-01-21
  • 소재지 : 안동시 운흥동 231
관용건물(官用建物)이 빽빽이 들어선 가운데 위치하였고 탑 근처에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 있어 사찰지(寺刹址)임이 틀림 없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영가지(永嘉誌) 등에 법림사재성남(法林寺在城南)이라고 있으니 즉 이곳에 비정(比定)되어 있다. 탑은 후세의 보수로 인하여 기단부(基壇部)의 원형을 잃었다. 지금은 고(高) 약 42cm로 화강장석(花崗長石) 3단(段)이 놓여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길이 27.5cm, 넓이 12.5cm, 두께 6cm 의 무문전(無紋塼)을 사용하여 5층을 중적(重積)하되 장단(長短)을 어긋나게 쌓았고 초층은 높으나 이층부터는 체감(遞減)되었다. 옥개(屋蓋)는 전재(塼材)를 사용한데서 오는 제약으로 인하여 폭이 일반석탑에 비하여 현저히 단촉(短促)되었으니 이것은 전재를 사용하는 한 불가피한 형태로서 전탑(塼塔)의 본지(本地)라고 할 중국에 있어서도 동류(同類)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옥개 하부의 받침수는 초층부터 10, 8, 6, 4, 3단으로 체감되었고 상면은 안동의 신세동 칠층석탑(新世洞 七層石塔)과 같이 층을 두지 않고 추녀 끝에 목조 연함(椽含)을 달고 각층 전면에 기와를 입히고 있음은 이 전탑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탑신에는 각층에 감실(龕室)을 개설하였으니 초층 옥신 하부에 높이 47cm, 폭 55cm의 화강석으로 연광(椽匡)을 돌린 감실이 있고 2층 옥신 사면과 3층 옥신 남면에도 전 이매 두께 높이의 소감형(小龕形)이 개설되었으며, 2층 옥개 남면에는 2구(軀)의 인왕상(仁王像)을 조각한 화강판석(花崗板石)을 감입(嵌入)하였다. 이와 같은 감실의 개설은 모두 형식적( 形式的)이며 옥개 상면의 기와와 아울러 목조탑파(木造塔婆)의 잔재(殘滓)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상륜부는 전실(全失)되었으나 연화(蓮花)가 조각된 복발형(覆鉢形) 석재가 얹혀있을 따름이다. 이 탑은 창건 이후 여러 번 수리가 가해져서 일부에서 원형의 변경을 보았을 뿐 아니라 수리 할 때마다 부족한 전재를 신조(新造) 보완(補完)하여 외관을 손상시키고 있다. 그뿐 아니라 영가지에는 “法林寺塼塔在府城南門外 七層本府大裨補 上飾如法興寺塔 萬曆戊戌 明將楊登山單人撤去” 라 있고 동지(同志)의 법흥사전탑(法興寺塼塔)에 대한 기록에도 “상유금동지식(上有金銅之飾)”이라고 있어 법흥사탑과 같이 7층이었고 금동제의 상륜부가 있었던 모양이나 만역무술(萬曆戊戌 ) 즉 선조(宣祖) 31년 서기 1598년 임란 직후 명(明)의 단인(單人)이 도취(盜取)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학술자료

  • 1. 안동의 문화재 : 지정 문화재편(1995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서수용 / 발행처 : 영남사
  • 2. 安東文化財大觀(2007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안동시 / 발행처 : 안동시
  • 3. 경상북도의 석탑Ⅵ(2012년 발행)
    조사보고서 / 저자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발행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 4. 국보·보물 문화유산을 찾아서 , 경상북도(경주·대구 제외)(2013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김광호 / 발행처 : 혜성
  • 5. 안동 도시공간구성의 변천에 관한 연구(2014년 발행)
    단행본 / 저자 : 김기철 / 발행처 : 대구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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