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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림사

산림정책

삼국시대
계림임수/삼국시대계림임수/삼국시대

천연수림 또는 인공으로 수림을 만들어 임수라 불렀으며, 그 보전ㆍ육성에 노력하였다.
삼국시대에 이루어진 임수는 15개소이다(경주의 나정ㆍ계림ㆍ천경림 등과 김해의 수로 왕릉, 동래의 해운대와 울진의 월송정, 김제의 벽골제 등). 주로 사적의 기념과 종교적 의의를 지닌 것, 풍치보전과 풍해 또는 조해를 막기 위한 보안적 의의를 지닌 것들이 많다.

고려시대
밀양율림/고려시대계림임수/삼국시대

김해의 가락제방, 안동의 대왕수, 달성의 공산동수, 밀양의 율림, 강릉의 한송정과 경포, 울진의 취운루 등 이 시대에는 14개의 임수가 설치되었다. 본래는 풍치보전과 보안적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나 궁실이나 큰 사찰들의 건축재료 이용, 강대국들과 교역ㆍ조공 및 국방 등을 위한 임목의 벌채 이용으로 점차 황폐화 되어 갔다.

조선시대
남해물건방조어부림/조선시대남해물건방조어부림/조선시대

풍치를 돋우워 주고 풍해ㆍ조풍ㆍ수해를 막기 위하여, 또는 성곽과 성문을 가려주는 군사적 목적으로, 또는 교통상 표시를 위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며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였으며 소나무의 경우는 큰 재목을 위하여 일부지역을 나라에서 보호 육성하였다.

일제강점기
황폐한 포항지구황폐한 포항지구

산림의 공용제도와 사점금지제도 등을 폐지하고 임야조사위원회를 두어 국유림과 민유림의 경계를 확실히 하였다. 민유림은 오랫동안 계속된 남벌로 인하여 도처에 황폐임지가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사방사업을 실시하였으며, 또한 국유림 대면적에 벌채가 이루어져 원시림이 파괴되었다. 임야조사위원회 : 1917년부터 1935년에 걸쳐 일제가 한국의 임야를 강탈하고자 실시한 조사사업

근현대
현재의 포항지구현재의 포항지구

혼란기 1945~1953ㅣ 산림황폐화 기간 : 도벌ㆍ남벌행위 성행, 연료채취, 산불등으로 피해
원조사업기간 1954~1960ㅣ 6ㆍ25 복구 자재 공급을 위한 목재벌채로 산림의 파괴 증가
정비기 1961~1972ㅣ 제도개선기간 : 산림법 제정, 연료림 조성사업
녹화조성기 1973~1987ㅣ 자원기반조성기간 : 제1차 치산녹화 10년계획수립

임수

함양대관림
  • 함양대관림
  • 함양대관림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며, 신라말 함양 태수-최치원 선생에 의해 수해 방비를 목적으로 조성된 교육적 기념림이다.(120여수종으로 이루어짐.)

물건방조어부림
  • 물건방조어부림
  • 물건방조어부림

물건방조어부림은 바람과 해일 피해를 막고 고기를 모이게 할 목적으로 조성 됐으며, 경남 남해 삼동면 물건리에 약 300여년 전 방풍과 방조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나정임수
  • 나정임수
  • 나정임수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깃든 곳 오릉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1Km쯤 떨어진 소나무 숲 속에 시조유허비 옆에 우물을 나정(蘿井)이라 한다.

계림임수
  • 계림임수
  • 계림임수

경주 김씨 시조의 탄생처.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사이에 있는 숲으로서 왕버들,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다.

정원의 역사

고구려
  • 고구려 안학궁지
  • 고구려 안학궁지
안학궁지

약 12,000평의 성곽내에 52동의 건물과 정원으로 구성된 대규모 궁궐. 특히 연못은 궁궐 동쪽 모퉁이에 두었다.

백제
  • 백제 궁남지
  • 백제 궁남지
궁남지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조에 "궁궐 남쪽에 연못울 파고, 주위 물가에는 버들을 심었으며 물 가운데 방장선산을 모방하여 섬을 만들었다." 라고 전해진다. 궁남지는 백제의 조경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적이다.

신라 및 통일신라
  • 신라 및 통일신라 임해전지
  • 신라 및 통일신라 임해전지
임해전지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에 도교와 관련된 선산을 만드는 정원양식으로 경주 안압지와 임해 전지가 있다. 총 5,800여평 되는 면적 속에 호안길이 1,330m로서 연못의 서측은 동궁과 연결되었고 다섯개의 정자들이 세워져 있다.

고려
  • 고려 청평사
  • 고려 청평사
청평사

통일신라시대의 정원양식이 계승 발전된 것으로 연못을 파고 삼신상을 본떠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연못가에는 정자를 짓고 또 괴석들을 늘어 놓았다.

조선시대
  • 조선시대 청암정
  • 조선시대 청암정
청암정

자연 그대로를 보고 즐기며, 사람이나 건축 모두가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 하였다. 집터 뒤 구릉에 단을 지으며 뒤뜰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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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날짜 :
  201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