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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자료실

제목
학교는 여전히 ‘남성시대’
  • 등록일2003-06-16 11:26:44
  • 작성자 관리자
내용

학생들이 여성학 수업 시간에 ‘왕자와 총칼싸움하며 친한 친구로 지내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보고서로 낸 적이 있다. 이것이 내 딸에게 들려줄 수 있는 성고정관념을 벗어난 각본 1호였고 다행히 이 이야기는 딸의 심리적 원형이 됐다고 자신할 만큼, 딸은 이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아마 밤마다 내가 이 이야기만 한 두세 달은 족히 읽어주었던 것 같다. 1990년 대 중반까지만 해도 읽어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성별 사회화를 벗어난 동화나 만화는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지나 딸이 1학년이 돼서야 내가 한국의 신화 책 속에서 발견한 것이 선문대 할망의 이야기였다. 

딸·아들 구분 안하고 싶어도…

‘말씀’이나 ‘영’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남신이 아니라 오줌과 똥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선문대 할망은 어느모로 보나, 가부장제 이전 생명과 세상을 창조하고 몸과 정신이 한 몸이던 위풍당당한 대모신(大母神)이었다(나는 내 손주 때쯤이면 선문대 할망이 육지와 제주도를 몇 걸음에 건너고 똥을 싸서 산을 만드는 모습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안 늦었구나 싶게 딸은 이 이야기에도 흠뻑 빠졌다. 나한테 들은 얘기를 누군가에게도 마구 들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지 ‘선문대 할망이 오줌을 누었는데, 그게 바다가 됐대…’하며 며칠을 아침밥을 먹을 때마다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딸을 보며,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이야기 해주렴”하는 내게 딸은 큰 일 날 소리한다며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안 돼. 똥도 나오고 오줌도 나오는데…”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학교란 곳이 일찌감치 세상을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어 돌, 흙, 물, 똥 같은 자연은 생명 없는 무가치한 것, 저속하고 쌍스러운 것으로 은연중 가르치는 곳, 가부장적 세계관인 심신이원론을 아주 체계적으로 주입하는 곳이라는 것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딸은 심신일원론은 ‘엄마의 질서’가 주재하는 가정이란 공간에서만 통용되고 바깥 세계는 또 다른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는 걸 잘(?) 구분해 처신하고 있었던 거다. 근엄한 학교에서 어디 똥, 오줌, 토악질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작년에 아들과 얘기하던 중 우연히 급식통을 밀고 오는 것은 남자애들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역시 아들은 이 이야기를 하며 씽긋 웃으면서 “엄마, 우리 선생님이 좀 그래. 힘든 건 남자애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줘야 한대. 큰 여자 애들이 있는데도…” 1학년 때조차 여자, 남자가 함께 급식통을 밀고 왔는데, 유달리 ‘사내는…’을 운운하는 남자 선생님을 만난 아들은 ‘엄마의 질서’와 다른 세상의 질서를 정통으로 직면하고는 딸처럼 알아서 잘(?) 처신하고 있었던 셈이다.

양성평등 시각 가진 교사 양성해야

이런 선생님 밑에서 엄마가 저녁밥 지을 동안 아빠는 아기 동생 목욕을 씻겨주는 교과서 내용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소화됐을까? 중 1교과서에는 가정 교과서에 성별사회화와 양성성 개념이 소개되고 있다. 남녀공학인 딸의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여학생, 남학생이 함께 바느질을 배운다. 

학교에서 이 같은 교과내용의 변화는 분명히 여성학의 시각이 반영된 새로운 내용이다. 그러나 먹는다고 다 소화돼서 우리의 살과 피가 되는 건 아니다. 참외씨, 수박씨 같은 건 그대로 똥으로 나온다. 지금의 교육체제에서 교과에 포함되고 있는 부분적인 여성학적 교과내용은 참외씨, 수박씨 같은 게 아닐까? 내가 옆에서 딸을 관찰해볼 때 성별사회화와 양성성은 시험 때 암기해야 하는 내용 이상이 아니었다. 

암기라도 하게 된 게 다행인 건가? 딸의 바느질 배우기는 결국 숙제로 넘겨졌다. 그런데, 여자 친구 남자 친구 할 것 없이 바늘땀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고른 간격으로 떠진 천을 가져온 것을 보고 딸은 아무래도 수행 평가 점수 망칠 것 같다며, 바느질 숙제 다시 할 테니 이번에는 엄마가 좀 도와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누나가 하는 바느질 숙제를 지켜보던 아들 녀석은 그때부터 바느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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