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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자료실

제목
처녀막을 여성막으로
  • 등록일2003-03-14 17:06:47
  • 작성자 관리자
내용

 얼마 전의 일이다. 새 신발을 신고 어떤 모임에 갔다. 내 신발을 보고 누군가 ‘새 신발이네?’ 하길래 ‘응’하고 말했다. 그때 내 기분은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하늘까지 닿겠네’ 정도로 간추려질 듯하다. 새 신발을 신고 뻐기고 싶었다는 말이 아니라내 마음이 그 노래와 맞닿아 있었다는 뜻이다. 갑자기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눈을 번뜩이며그 신발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발을 빼기는 했지만 이미 몇 명의 발이 신발을 밟고 난 뒤였다. 내가 항의하자 ‘원래 새 신발은 밟아주는 거’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흰 운동화 위에 찍힌 흙 묻은 신발 자국은 손으로 털어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의 번뜩이는 눈빛, 그리고 막무가내로 덤벼들어 신발을 밟는 모습에서 나는 일종의 광기를 보았다. 그것을 마초들의 ‘처녀 밝힘증’으로 읽었다면 내가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일까.

그들이 평소에도 신발을 밟는 악취미를 가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발을 밟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쑥스러워 하며 사과할 사람들일 것이다. 또새 신발을 밟는 것이 어떤 전통이나 미풍양속 쯤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잘라 말하건대 그들은 ‘처녀 신화’의 연상선 위에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전에서 ‘처녀’라는 단어를 찾으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처ː녀(處女)[명사]

1.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여자. 처자(處子). ↔ 총각. (참고) 낭자(娘子).

2. 아직 이성(異性)과 성교(性交)를 한 적이 없는 여자. 숫처녀.

3. 일이나 행동을 처음으로 함. 《일부 한자어와 어울려 복합어를 이룸.》 처녀 출전/처녀출판. 

영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녀 處女 a virgin; a maiden; a maid; [처녀성] virginity

·처녀성을 잃다 lose one’s virginity; lose one’s silken snood

·처녀성을 빼앗기다 be deflowered; be deprived of her virginity [virgin purity] 

우리가 보통 쓰는 단어는 우리의 생각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처녀’는 비혼여성보다 숫처녀나 일을 처음으로 하는 것을 가리킬 때가 많다. 아마 일을 처음으로 한다는 뜻도 숫처녀라는 내용에서 따라왔을 것이다.

문제는 ‘처녀’가 숫처녀를 말하는 하나의 대표 단어로 쓰인다는 점이다. ‘처녀작·처녀지’를 ‘첫 번째 작품·개척 안 한 곳’으로 표현해도 그 뜻이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처녀 신화’와 더불어 ‘처녀막 신화’는 아직도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굳이 ‘처녀막’이라는 단어를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 중 하나이자 신체의 일부분을 뜻하는 말로 ‘여성막’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번거로운 일을 왜 자처하느냐’고 묻는 사람이나 ‘언어는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경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의식이 변해야 언어도 바뀔수 있다.

여성들을 억압하는 남성이 중심이 되는 생각에 물들어 있는 특정 단어들을 여성이 쓰지 않아 죽은 언어(死語)로 만들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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