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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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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인물: 1,798

경북을빛낸인물 목록을 번호, 인물명, 시대구분, 요약설명 순으로 나타낸 표입니다.
번호 인물명 시대구분 요약설명
1 각덕 삼국시대 신라 구법승(求法僧)의 시초를 열어 놓은 중으로 540년(진흥왕1년)에 양(梁)나라에 가서 공부를 하고 549년(진흥왕10년)에 양나라 사신과 함께 불사리(佛舍利)를 갖고 돌아왔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사리이다. 이 때 임금은 흥륜사(興輪寺)까지 나가 영접하였다. 불교는 이때부터 크게 성하였다.
2 강사상 조선시대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상지(尙之)이고 호는 월보(月甫)로 조선조 연산군 갑자사화에 화를 입은 대사어(大司語) 형의 증손이오 사인(舍人) 온(溫)의 아들이다. 1519년 문경군(聞慶郡) 산양면(山陽面) 존도리(存道里)에서 출생하여 1546년(명종 1년) 문과에 급제 한림(翰林) 이랑(吏郞)을 거쳐 삼사(三司)의 장관으로 예문관(禮文館) 제학(提學),
3 강서 조선시대 자는 원경(遠卿)이오, 호는 난곡(蘭谷)이며, 본관은 진주(晋州)로 우의정 사상(士尙)의 아들이다. 1538년(중종 23년)에 태어나 1564년에 진사가 되고 1569년에 문과에 올라 심사를 거쳐 좌승지에 이르렀고, 1589년에 돌아가니 영의정을 증직했다. 당시 실력자 중 한 사람인 대사헌이 임금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인재를 천거하는 것은 마땅히 대사헌으
4 강석구 조선시대 선생은 진주(晉州) 강씨 진환(震煥:증 이조참판)의 아들로 1726년(영조 2년) 조마면 강곡리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낙서(洛瑞), 호(號)는 학암(鶴岩)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질을 타고나 배우기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철없이 놀 나이에도 남다른 의기가 있었다 한다. 어릴 때 벗들과 산계곡에서 놀다가 산사태 난곳에서 사람의 해골을 발견했다. 남들은 놀
5 강설 조선시대 공은 진주인(晉州人) 참봉 강해로(姜海老)의 아들로 1583년(선조 16년) 회덕(懷德)에서 태어났다. 자는 정보(淨甫), 호는 남와(南窩)였다. 일찍이 한강 정구(寒岡鄭逑)의 문인으로 문학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612년(광해 4년) 진사과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폭정에 벼슬을 버리고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으로 이사했다. 공은 특히 1634년(인조
6 강성남 조선시대 진주인(晋洲人)으로 통정 득호(得豪)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에 글을 익혀 학덕이 겸비하고 역학(易學)에 능했으며 임진왜란의 후유증(後遺症)을 항상 염려하였으며 인조병자란(仁祖丙子亂)에 쌍령(雙嶺)에서 용진력전 하였으나 국치(國恥)의 소식을 듣고 하향하여 후진교육에 힘썼다. 숙종조(肅宗朝)에 통정 장악원 판도사(通政 掌樂院 判度事)로 증직(贈職) 받았다.
7 강순세 조선시대 본관은 신천(信川)으로 고아 대망리에서 승랑장 인석(勝郞將 仁碩)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기골이 장대하며 학문이 탁월하여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아 왔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항시 나라 안에 당쟁과 사화로 민심이 어지러움을 단신하더니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 때에 한 포의서생(布衣書生)으로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서 조국과 민족을 구출할
8 강신 조선시대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면경(勉卿)이고 호는 동고(東皐)로 우의정을 지낸 사상(士尙)의 아들이며, 승지 서(緖)의 아우로 1544년(중종 39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1567년(명종 22년)에 진사에 합격하여 1577년(선조 10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삼사(三司), 이랑(吏郞), 검상(檢詳), 전한(典翰) 부제학(副提學) 믹 병조(兵曹), 이
9 강여호 조선시대 선생은 진주 강씨(晉州姜氏) 설(渫)의 아들로 1620년(광해 12년)에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계숙(啓淑)이요 호(號)는 기재(耆齋)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침식을 잊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하여 스승이자 삼종조(三從祖)인 복천(復泉)공은 후세까지 가문을 빛낼 아이라고 극히 사랑했다 한다. 선생은 1654년(효종 5년) 문과(文科) 급제
10 강영두 조선시대 관향은 진주며 강경호(姜景鎬)의 아들로 화북면 달산동에서 태어났다. 진주 강씨가 이곳으로 옮겨 살게 된 것은 임란후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거함이었다. 강효자의 집은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찌나 술을 좋아하는지 하루만 술을 대접하지 않으면 크게 화를 내고 했다. 강효자는 날마다 섶나무를 해서 10리길을 지고 가서 나무를 팔아 술을 사서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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