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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성

  • 지정 : 기념물
  • 한자명 : 金烏山城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 시대 : 조선
  • 지정일 : 1986-12-11
  • 소재지 : 김천시 남면 오봉리 산184
이 城은 海拔 976m의 험준한 金烏山의 頂上部와 溪谷을 二重으로 두른 石築山城이다. 內城은 山의 윗부분에 둘레가 10리나 되도록 쌓았는데, 절벽이 험한 곳은 天然의 城壁을 이루고 있으므로 따로 쌓지 않았다. 外城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되며, 內·外 성벽의 길이는 6.3km나 된다. 高麗時代 이전부터 있었던 성터로 高麗末期에 倭寇의 侵入때 補修하여 善山·安東·開寧·星州 등의 百姓들이 城에 들어와 지키게 하였다. 朝鮮 太宗 10年(1410)에 國家的 計劃으로 크게 고쳐 쌓았으나 外民族의 侵入이 없자 차츰 폐허가 되었다가 壬辰倭亂·丙子胡亂때·高宗 5年(1868)에 계속해서 고쳐 쌓았으며, 朝鮮後期에는 善山都護府使가 金烏山城 守城將을 겸하여 開寧·金山·知禮 등의 고을이 軍倉을 이곳에 두었었다. 外城을 쌓아 二重으로 만든 것도 이때의 일이었는데 지금은 內城·外城의 문터(門址)와 暗門의 형세가 남아있다. 성안에는 폭포가 있는 계곡과 연못·우물이 많았고 各種 建物이 있었으나 모두 폐허가 되었다. 內城倉·大惠倉 등의 倉庫와 鎭南寺가 있었다는 記錄이 있고, 附近에는 道詵窟·金烏書院·吉再祠 등이 있었다. 지금은 성안에 金烏山城重修頌功碑가 남아 있어 옛 번창할 때의 성안 모습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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