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부는 해주(海州) 오씨로 의성인(義城人) 김병필(金秉弼)의 처였다. 천성이 정숙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시조모와 시부모를 섬김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효부는 집이 지극히 가난했지만 품을 들어도 입에 맛는 음식을 거르게 한 일이 없었다. 하루는 양식이 떨어져 통곡하고 있으니 나는 새들이 곡식을 물어다 마당에 떨구어 어른들을 봉양하기도 했다. 조정에서 이 기이한 효심에 감동되어 정려(旌閭)를 내려 효부를 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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